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인 조르바 (문단 편집) == 논란 == 이 소설이 출판될 당시 [[그리스 정교회]]는 대놓고 카잔차키스를 비난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제정신 아닌 [[수도자]] 자하리아가 [[수도원]]에 대고 불을 지르는 장면이나 조르바가 신을 악마라고 주장하며 난잡한 행동을 하는 것 등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카잔차키스는 평생 [[노벨문학상]] 후보에 [[1951년]]과 [[1956년]] 2번 올랐지만 결국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카잔차키스의 [[무신론]]적 성향을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당시 카잔차키스와 경합을 벌인 [[알베르 카뮈]] 역시 무신론자임에도 수상을 한 걸 보면 그저 일설일 뿐 공식적인 사유는 아니다. 영국의 평론가 [[콜린 윌슨]][* 20대에 쓴 문학 평론집 <아웃사이더>로 큰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은 "카잔차키스가 [[러시아인]]이었다면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다."며 카잔차키스를 평가했다. 이 소설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문제가 되어 카잔차키스가 파문당했다고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에서도 이를 잘못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카잔차키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소속 신자였기 때문에[* 그리스 독립 전쟁 이후 독립한 [[그리스 왕국]]을 사목 지역으로 두는 아테네 대주교 관할의 그리스 교회(Εκκλησία της Ελλάδος)가 185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에서 독립하였지만 1912~13년의 [[발칸 전쟁]]으로 그리스가 획득한 북부 그리스와 크레타, 동부 [[에게 해]] 제도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직속 교구이다.] 세계 총대주교만이 그를 파문할 수 있었는데, 세계 총대주교는 카잔차키스를 파문한 적이 없고 오히려 크레타 대주교에게 카잔차키스의 장례식 집전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파문에 대한 정보가 와전된 것은 로마 교황청과 아테네 대주교청이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금서로 정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 완역본([[문학과 지성사]])의 역자 후기에 이 부분을 설명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